추모비 건립 특강 ...퇴계선생 금계행장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본문 바로가기

서브이미지

추모비 건립 특강 ...퇴계선생 금계행장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추모비 건립 특강 ...퇴계선생 금계행장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8회 작성일 23-08-11 12:27

본문


농암 예견은 적중했다. 역사는 이로부터 3년 뒤 1545년, 전별연에 참석했던 윤임, 유인숙, 유관과 충재, 회재 등 당대 인물들이 사사되거나 귀양 가는 대참변이 일어났다. 을사사화의 발발이다. 3년 뒤의 일을 '분어행'을 쓴 농암은 예견했고 물러났다. ‘분어행’의 한 구절, "때를 지어 다니며 의기양양 하지만 하루저녁 풍파에 몸 둘 곳도 없는 처지(隨行而逐隊 揚揚方得意 風波一夕起 將身無處置)"라고 한 그대로 되었다. 권고 받고 물러난 퇴계는 농암과 더불어 영남사림으로 사화를 벗어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농암은 만년, 기로소에 입소되는 영예를 얻었으며, 명종으로부터 “경은 진실로 천하대로天下大老요 당세원구當世元龜이다. 염퇴이양恬退頤養이 이미 명철보신明哲保身을 넘었으며 정관선기靜觀先幾 하였노라”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은퇴 후 거듭되는 상경 명령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으니, 나라에서 1품 숭정대부의 품계를 내려 예우했다. 그래서 조선전기 보기 드문 ‘재야재상’이 되었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 직책을 띠고 있었다.

퇴계와 농암은 긴 문학적 여정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존경심은 이후 시상詩想에 내재화 된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다음과 같은 시가 그런 시이다. 제목이 ‘농암 이 선생께 올림(上聾巖李先生)’이다.

高臺新曲賞深秋 높은 대 새 구비에서 가을을 감상하고

手折黃花對白鷗 국화를 꺾으며 물새를 바라본다

仰德至今淸夜夢 덕을 우러러 본 지금, 맑은 밤에 꿈결같이

月明時復到中洲 밝은 달이 물가에 다시금 떠오른다

농암은 1555년, 89세에 몰했다. 나라에서는 효와 절개의 정신을 기려 ‘효절공孝節公'이란 시호를 내렸고, 청백리에 녹선 했다. 조선 500년, ‘대로大老’라고 불려 진 인물은 흔하지 않으며, ‘효절’이란 시호 역시 농암이 유일하다. 농암 역시, 전 생애에 걸쳐 명예를 포기하여 더 큰 명예를 얻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요컨대 퇴계에게 정암의 사사처형과 농암의 은퇴전별은 정치여정에서 목격한 가장 충격적이며 인상적인 한 장면이었다. 퇴계는 정암의 도학정치, 혹은 개혁정치 실패를 교훈 삼으며, 농암의 정계은퇴와 회재의 경전저술을 전 생애의 지남으로 삼았다. 여기에 그 종합적인 인물로 중국의 주희朱熹를 모델로 떠올린 것이 아닌가 한 다.

결국 퇴계에게 '도학'이란 학문저술과 진퇴겸양을 동시에 이루는 일이며, 이런 태도의 삶이 곧 문명국 건설의 절대적인 요소이고 기준이었다. 행장저술과 인물선정은 철저하게 이 기준의 적합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4. ‘嗚呼 亡友 錦溪黃先生!’

1)

인간 친애의 끝은 어디인가. 죽음이다. 죽음은 더 이상 인정의 교감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원한 별리에 들어 갈 수밖에 없다.

퇴계 전 생애에서 한 인물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비통해하고, 이렇게 슬픈 추모사를 쓴 경우는 없다. 부고를 듣고 지방을 써 붙이고 곡을 했다. 이어 만사輓詞, 제문祭文을 썼다. 그것도 두 편씩 썼다. 제문 한 편은 보기 드문 장문으로, 고인에 대한 생애 전체 추억을 담았다. 그 글들은 슬픔을 넘어 격정의 비등점에 이르고 있다. ‘피눈물이 난다’고 했고, ‘실성하여 오래 울부짖었다’ 고 했다. 정말 인 것 같다. 제문 한 부문은 이러하다.

“아아, 슬프다 금계여!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영결의 말이 부고와 함께 이를 줄을! 실성하여 오래 부르짖으니, 물이 쏟아지듯 눈물이 흐르네. 하늘이 이 사람을 빼앗아 감이 어찌 이리도 빠르게 하십니까! 사실인가, 꿈인가, 너무 슬퍼 목이 메여, 말을 다 할 수 없고, 정을 다 억누를 수 없네. 아아, 슬프다 금계여!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으니, 끝났구나, 끝났구나! 애통하고, 애통하다!”원문: 嗟嗟錦溪 而至此耶 何意訣言 與訃偕至 失聲長號 傾水老淚 天奪斯人 曷其亟耶 眞耶夢耶 惝恍哽塞 言不暇悉 情不能裁 嗟嗟錦溪 一去難回 已矣已矣 哀哉哀哉

관상棺上에 명정銘旌을 썼다. 이런 일도 없었지만, 쓴 글은 더욱 놀랍다. ‘嗚呼亡友錦溪黃先生’이라 썼다. 번역하면, “아아 슬프다, 나의 벗 금계 황 선생이여”이다. 이 표현은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膾炙되었다.『평해황씨 족보』의 기록은 이러하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8-11 14:32:08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8-11 14:41:54 錦仙 선비자락 소식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사명 (주)스피드레이저기술 주소 경기도 광명시 하안로 108 에이스광명타워 208호 사업자 등록번호 119-86-49539 대표 황병극 전화 02-808-3399 팩스 02-6442-7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