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비 건립 특강 ...퇴계선생의 금계사랑-III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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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건립 특강 ...퇴계선생의 금계사랑-III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추모비 건립 특강 ...퇴계선생의 금계사랑-III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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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8회 작성일 23-08-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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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퇴계에게 보낸 편지에도 영봉서원 배향 인물과 관련하여 매우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다.

이처럼 금계는 짧은 임기 동안 엄청난 일들을 했다. ‘과로사過勞死 하셨다’는 종손의 말은 사실일 것 같다. 청빈에 과로였으니 더욱 그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금계는 자신의 철학이 있었다. 신재 주세붕에게 보낸 편지에, “措世而明道 反身而窮理”라 했다. 해석하면 ‘세상에 쓰여 길을 밝혀야 한다’와, ‘자신을 성찰하고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 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학문의 목적은 인간 삶을 유익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새 길을 내야한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사람이 학자이고 지성인이다. 금계는 그 길로 갔다.

금계는 범인에게 없는 성정性情이 있었다. ‘자신의 과로를 운명’이라 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동서고금에 없다. 성주 목사 재직 시, 밤새도록 침식을 잊고 책을 읽어 그만두지 않으니, 누군가 과로에 병이 생길까 걱정을 했다. 그때마다 “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본래 마음 수양으로 기를 보양하는 일인데, 어찌 책을 읽는다고 병이 나겠는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운명이지, 글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했다. 행장 글의 원문은 이렇다.

“每於公餘 輒與吳對案講讀 夜以繼日 忘寢與食 亹亹不倦 人或以因勞生病爲規者 答曰 讀書爲學 本以治心養氣 安有因讀書而致生疾之理 其或有反是者 命也 非書書罪也”

금계는 하늘이 내린 재능을 지녔고, 거기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삶은 그리하여 불꽃이 되었다. 그 불꽃의 하이라이트가 ‘단양진폐소’였다. 사실 퇴계도 금계 과로를 알고 있었다. 월천 조목에게 보낸 편지에,

“중거仲擧(금계 字)는 확 터지고 밝으며, 영민하고 명쾌합니다. 늦게 학문을 좋아하여, 고을원의 재임 때 특별히 교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공무와 학문을 진력하니 이로 인해 피로가 쌓여 병을 얻었습니다”

원문: 荅趙士敬書云 仲舉開爽敏快 晩好此學 在州殊有倡率之事 盡力仕學 因勞生病

『성호세설』권15 ‘人事門’

금계는 퇴계와 시대적 관심사가 일치했다. 그런데 그 관심사에 항상 한 발 앞에 있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실행에 옮겼다.『주자서절요』도 그렇고, 서원창건운동도 그렇고, 상소문도 그렇다. 그것도 16세 어린 나이에 그러했다.

퇴계 편지 분석에 천착했던 권오봉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학술상 중요한 주제를 논하거나 문목問目을 가장 많이 주고받은 10인은, 이문량, 기대승, 황준량, 이정, 조목, 김취려, 우성전, 구봉령, 이덕홍, 금란수라 했다. 이문량은 친구이니 제외하면 9명인데, 금계가 두 번째 이다. 금계와 고봉은 퇴계 제자 가운데 학술적 계승으로는 단연 앞선다.

이런 연유인지 평가도 매우 후하다. 퇴계는 급문 309명 제자 가운데, 46명을 언급, 평가한 바 있다. 기 조사에 의하면,

“기대승 32회, 이준 21회, 조목 17회, 정유일 15회, 이안도 14회, 황준량 12회이다. 다음으로 금란수 9회, 김취려, 이함형 8회, 김성일, 홍반 6회, 권호문, 김부륜, 이숙량 5회, 금응협, 우성전, 이이, 이정, 정지운 3회, 김명원, 김부필, 박운, 유중엄, 이덕홍, 정구, 허엽 2회이다.”

2회 이상 평가받은 26명에 대해 부정평가 109회(58.9%), 긍정평가 31회(16.8%)인대, 긍정평가를 많이 받은 제자는 금계(7회), 기대승(6회), 정유일(3회), 김성일(3회)이고, “10회 이상 평가를 받은 제자 중 가장 많은 긍정평가를 받은 제자는 금계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 평가 언어 가운데, ‘세속을 벗어난 인물’과 “명민하고 풍표가 있어, 미모가 그림 같다(明敏有風標 眉目如畵)”는 극찬이다. 되새겨 보면, ‘그림 같은 미모에 신선 같은 인물’로 요약된다. 제자 그 누구도 듣지 못한 평가이다. 평가는 그대로 퇴계가 금계를 보는 기준이며 안목이다. 퇴계가 ‘재주가 화려하여’ “오래 함께하여 깨달은바가 적지 않았다”고 하는 말도 과장이 아니었다.

사관史官의 평가는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다. 퇴계는 사관으로부터 생애에 “한 번도 타인의 잘못을 말한 적이 없고, 한 번도 국사를 논한 적이 없다(未嘗言人之過 未嘗言及時弊,『명종실록』乙酉條)”라고 평가받았지만, 이는 사실과 꼭 부합되지는 않는다.

퇴계만큼 타인의 잘잘못을 거론한 인물도 역사상 흔하지 않다. 문집 한 부분을 ‘논인물조論人物條’라고 엮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을 비판했으며, 문집 곳곳에 인물평이 산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포은 정몽주, 점필재 김종직.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등, 전시대는 물론이고 동시대의 인물까지 거의 망라되어 있다. 퇴계의 평가는 엄격하여 당대는 물론 후일까지 엄청난 인물 포폄褒貶의 근거로 작용했다. 제자들의 평가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하겠다.

그런데 퇴계가 비판한 부류는 사림계보에 분류되는 인물이다. 잘잘못을 거론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면 훈구세력의 인물들이다. 이런 분류의식은 매우 주목되는 점으로, 전자의 인물들이 얼마간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역사발전에 기여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후자는 직접적인 위해危害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역사에 남길 가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집에 권력을 움켜잡고 술수로 정치를 천단한 인물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점은 이러한 역사의식 때문이다.

요컨대 문명국의 건설에 기여하고 안하고가 인물에 대한 기준인 셈이다. 퇴계에게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정암을 비판하면서도, 찬양하는 까닭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금계를 이토록 사랑함도 그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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