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비 건립 특강 ...금계의 글과 시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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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건립 특강 ...금계의 글과 시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추모비 건립 특강 ...금계의 글과 시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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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3-08-1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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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의 글과 시(次韻)는 이러하다.

“자리바위에서 퇴계와 임상(임내신)의 시를 따라 지었는데, 바위 위에 유상곡수가 있었다. 원문: 簟巖次退溪任相韻 巖有流觴曲水"

題品亭臺盡命名 정자, 누대 품평하고 이름 붙였으니,

一區形勝幻壺瀛 한 구역 명승지, 바로 신선세계일세.

蘭舟劈浪魚驚躍 목란배 물결 가르니 물고기 놀라 뛰고,

雪客翹沙眼轉明 백로 모래에 내려앉자 눈 더욱 밝아오네.

觴泛會稽飛醉興 술잔 띄우니 곡수曲水인양 감흥 일어나고,

雨催工部動詩情 비 재촉하니 두보杜甫처럼 시심 움직이네.

眞仙高會應傳說 신선들의 높은 모임 전설이 되리니!

留取金聲滿耳淸 머물러 듣는 금옥소리 귓전 가득 맑아오네.

『금계집』, 簟巖次退溪任相

2)

이 그림에서 명작 ‘농암 어부가’가 탄생했다. 세 분의 합작이다. 금계가 이때 어부가 원본을 결정적으로 구해 왔고, 퇴계 역시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완성 후, 농암이 서문을 쓰고, 퇴계가 발문을 썼는데, 그 글에 “아! 선생은 바라보면 신선 같아 진실로 강호江湖의 진락眞樂을 얻었다”고 했다. 이리하여 농암은 관료적 문학이 성행할 때 ‘강호지미江湖之美’와 ‘강호지락江湖之樂’의 새로운 문학지평을 열어, ‘강호문학의 창도자’가 되었다. 이 모임이 영남가단의 모태가 되어, 면앙정 송순宋純, 송강 정철鄭澈로 이어지는 호남가단과 쌍벽을 이루었다고 했다.

퇴계는 ‘어부가’, ‘도산 12곡’ 을 써서 남겼고, 후인들은 이를 합해 ‘도산가사陶山歌詞’라 했다. 퇴계 10대 종손, 고계 이휘영李彙寧은 “탁영담으로 나와 분강을 오르내리며 ‘어부가 3장’을 다 함께 노래했다”고 했다.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발문은 이렇다.

“전해오는 어부사는 누구의 작품인지 몰랐지만, 어부사를 읊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표표飄飄하여 유세독립遺世獨立의 정서가 일어났다. 이런 까닭으로 농암 선생께서 좋아하셨으며, 퇴계 선생께서도 탄상해 마지 않으셨다.”

분강은 농암 고향이다. 산천은 아름다워, 모재 김안국은 “산수가 맑고 아름다워 황홀하기가 마치 도원에 들어가 신선을 만난 듯하다(山水淸麗 恍然 若入桃源而値仙老)”고 했으며, 농암도 어부가에서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 (三公不換此江山)”고 했다. 농암은 영정影幀(보물 872호)모습을 보면 그 풍도가 신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시적 이미지는 신선세계의 신선모임이다. 퇴계가 농암에게 “빗속에 신선을 보낸다.” 고 하고, 농암도 고무되어, “스스로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퇴계도 ‘선경에 오른 듯하다’고 하니. 소망한 신선에 한 발 다가선 모습이다. 금계는 두 분 모두 신선이라 했다. 농암, 점석 일대는 ‘신선 세계’이며, ‘신선들의 높은 모임’은 그대로 ‘전설이 될 것’이라 했다.

농암은 모두가 신선이라 했고, 퇴계는 이미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금계 표현도 지나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자신을 신선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퇴계가 “세속을 벗어난, 그림 같은 인물”이라 했으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금계錦溪’와 ‘금선대錦仙臺’의 명명도 예사롭지 않다. ‘그림 같은 얼굴’과 ‘비단 같은 개울’ 은 정말 어울리지 않은가. 신선대는 있지만, 비단 같은 신선이 깃든 대- ‘금선대’의 명칭은 전국에서 유일하다. ‘유금선대遊錦仙臺’ 라는 시는 바로 신선유람神仙遊覽이다.

小白雲霞誰第一 소백산 경치 어디가 제일인가

仙臺風月自無雙 금선대 바람과 달, 짝할 데가 있으랴

爲披春服尋芳去 봄 옷 지어 걸치고 꽃 찾아 떠나

倦倚松陰倒玉釭 소나무 그늘에 기대어 술잔을 기울이네

단양 구담에서 ‘구선龜仙’이라 불린 이지번李之蕃과 의기투합했고, 그 아들 이산해는 8살에 쓴 글을 보고 격찬하며(屛見李山海八歲所書), 이후 친구처럼 시문을 주고받았다. 풍류 문필의 달인, 신재 주세붕과도 친밀했다. 신재가 22세 많고, 아계가 22세 연하였으니, 금계의 교유폭도 44세를 넘나들고 있다.

퇴계가 그러했듯이, 금계도 그러하다. 농암도 그러했다. 농암은 8개 고을, 25여년 고을 원을 자청해서 근무했고, 차관 은퇴한 분이다. 물욕을 물론 명예욕도 없는, 모두가 자기 과시 없는, 진정 신선 같은 고귀한 생애를 함께 걸어 간 분 들이다.

여기서 잠시, 금계가 신재를 그리워하며 쓴 시가 있어 소개한다. 제목이 “꿈에 주 경유를 만나 감회가 일어(夢周景遊有感)”이다. 여기서 신재를 신선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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