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비 건립 특강 ...금계와 퇴계선생의 만남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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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건립 특강 ...금계와 퇴계선생의 만남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 금선정문학관(錦仙亭文學館)방명록

추모비 건립 특강 ...금계와 퇴계선생의 만남 / 이성원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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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0회 작성일 23-08-1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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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고로, 화담 서경덕의 연모 일화는 만인이 안다. 황진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암의 일화를 아는 사람은 없다. 정암은 정말 미남이었던 모양이다. 소년 정암이 책을 끼고 공부하러 왕래하는데, 그 모습을 엿보고 사모하는 무남독녀 처녀가 있었고, 드디어 상사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아버지가 물으니, “그렇게 되었고, 이제 얼굴만 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했다. 사실을 안 아버지가 정암 아버지에게 울면서 사정하며, “얼굴만 보여주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했으나, 정암은 끝내 거절했다. ‘그럴 수 없다’ 했다. 처녀는 결국 죽었다.

‘정암행장’에 퇴계가 "少日 偶値女色 將近 卽麾去而避之(젊은 날, 우연히 여색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곧 물리쳐 피하였다)"라고 짧게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이 가공되어 18세기, 단편소설이 되었다. 안석경安錫儆(1718~1774)의 『삽교만록霅橋漫錄』에 나오는 글이다. 율곡 이이가 쓴 묘지명에 묘사된 정암 모습은 이러하다.

“아! 선생의 타고난 품성이 뛰어나셨다. 옥과 금 같이 맑고 깨끗하며, 난초 같고 달덩이 같은 모습이라 정말 볼만했다. 곧 봉황의 행동이며, 난 새의 비상, 바로 그 모습이었다.”

원문: 嗚呼. 先生稟受絶人 玉潤金精 相表淸秀 蘭滋月朗 容止可觀 鳳儀鸞翔 孝友忠直 英睿剛果. 幼不好弄 已具成人 模範慷慨 有大志 興慕聖賢 必欲追踵絶軌 世俗所屑 雖千駟萬鍾 一不介意 樂善疾惡 見人非違 若將浼焉.

일화가 없다면 미남이 아니다. 금계 일화도 비슷하다. 성주목사 재직 시, 아전의 처가 흠모해 상사병으로 죽었다. 여인은 원혼이 되어 나타났고, 금계는 준엄하게 타일러 거절했다. 드디어 여인의 한이 괴롭혀 병이 되고, 점점 깊어져 귀향길에 타계했다. 임종 순간에 손을 모으는 시늉을 하면서, “남여는 유별함이 있어야 한다(男女有別)” 고 했다.

성호 이익李瀷의 『성호세설』에 실려 있는 내용인데, 성호는 기록 끝에 “굽힐 수 없는 지조가 있었다”고 했다. 퇴계의 금계에게 보여준 일련의 일들은 어쩌면 '제2의 정암'을 생각한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래서 '선생'이라 한 것이 아니었을까.

퇴계 일화도 어떤 측면에서 그렇다. 두향은 퇴계가 단양을 떠난 이후에도 잊지 못했고, 운명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저기 두향이 왔다‘는 퇴계 후손들의 오랜 구전이었다. 지금 열화재 부근까지 왔고 모두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양평에서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갈 수 있었음은 생전의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생전에도 가까이 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퇴계 장례식은 제문과 만장으로 뒤덮였다. 오열이 강물처럼 흘렀다. 그렇지만 여인은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여인은 울며 돌아가서 빈소를 차리고 추모했다. 그리고 3년 상이 끝나는 날, 단양의 못에 가서 몸을 던졌다. 시신은 지나는 스님이 발견해 묻었다. 이후 오랜 세월 스님들이 묘를 살폈다.

세월은 흘러 왕조마저 바뀌었다. 후손들은 이 안타까운 할아버지의 로맨스를 이제는 숨기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두 분 만남을 숨김없이 밝히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두향의 묘는 최근 단양댐 건설로 이장했다. 그때 비석을 세웠다. ‘두향지묘杜香之墓’라 했는데, 이동은李東恩 퇴계 종손이 썼다. 두향의 존재가 인정되기까지는 430여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기록도 없고 말하기도 어려웠지만 퇴계 후손들은 대대로 두향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런 구전을 운산雲山 이휘재李彙載의『운산집』에 “퇴계 10대 종손 이휘영이 무덤을 찾았다”고 했는데, 아마 유일한 기록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퇴계 묘소 유사가 가을에 두향 묘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이는 최근의 일이다. 단양에서는 최근 해마다 ‘두향제’라 하는 큰 축제를 연다. 그녀로서는 분에 넘치는 대우를 한꺼번에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6. “감사가 가면 가는 것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냐.”

1)

금계와 퇴계는 어떻게 만났나? 농암 때문이었다. 금계는 농암 손서孫壻로, 처가妻家 도산 분천汾川을 오고가며 자연스럽게 퇴계를 만났다. 행장 글의 한 부분은 이러하다.

"황이 공(금계)을 선생(농암)의 문하에서 처음 알고, 서로 종유한 것이 가장 오래고 또 친밀하였다. 어리석고 비루하여 견문이 없었는데, 공을 만나 경발된 것이 많았다. 공이 물러나 돌아와서 진실로 오고 가며 예전 정의를 회복하자는 약속했고, 공은 항상 내가 늙고 병이 들어 몸을 보존하기 어려운 것을 염려했다. 어찌 오늘 늙고 병든 자는 세상에 남아 있고, 오히려 강건한 나이의 공을 곡哭 할 줄 알았으랴. 공의 언행을 기록한다고 했지만 정중하여 감히 모두 기록하지 못하고 오직 큰 것만을 대략 서술한다. 혹 다른 날 붓을 잡는 자가 상고하길 바라며, 졸렬한 글로서는 다 발명하지 못하니, 아아 슬프다! “

원문: 滉初識公於先生之門。相與游從。最久且密。愚陋無聞。得公以警發者多。公之退歸。實有往來修舊之約。而公常憂我老病難保。豈料今日老病者在世。而反哭君於康疆之年也哉。公之言行可紀者。鄭重而不敢盡。獨撮其大者如右。庶或他日秉筆者有考。而拙訥之文。無所發明。嗚呼悲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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