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양서원 (郁陽書院) 샘터 소공원 조성과 금계문학도서실 운영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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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5회 작성일 23-10-05 05:10본문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풍기읍(豐基邑) 욱금동(郁錦洞)에 있었다. 조선 현종(顯宗) 3년(1662)에 건립하였으며, 조선의 이황
(李滉)·황준량(黃俊良)을 봉향( 奉享)하였다가, 고종(高宗) 5년(1868)에 현판은 훼철되고 건물은 남아있었으나 6.25사변 당시
북한군 출몰을 방지하기 위해 UN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80년 금계호 담수로 수몰되기 전까지 단소와 활수당, 욱양서원 샘터가 있었으나 단소는 금양정사 앞에 이설되었고, 활수당
은 복원하지 못하였다. 샘터자리에 금곡 황영봉(錦谷 黃永鳳 1934년~2006년)의 후손들이 욱양서원 복설을 위한 초석으로 공
사를 진행하였고, 황씨중앙종친회에서 기념식수를 하였다.
욱양서원샘이 2023년 8월 집중호우로 흙더미에 묻혀 10월에 금곡의 뜻을 기리라는 박계남(朴季男)(소고 박승임선생의 후손)
여사의 주창으로, 욱계 황영회(郁溪 黃永會) 가 중심이 되어 자손들이 뜻을 모아 서원샘의 원천(原川)줄기에 이설하여 복원
공사를 진행 중이다.
욱양서원 샘터자리에 소백산 철쭉으로 소공원을 조성하여 금곡이 활동하던 시문학회 월란척촉회를 기념하고, 금계문학
도서실(錦溪 文學 圖書室) 로 시민 모두의 쉼터를 만들 예정이다.
자료실: 금계문학관 www.hwangbi.or.kr 금계 황준량 후손 황병극 (010-8835-7601)
(李滉)·황준량(黃俊良)을 봉향( 奉享)하였다가, 고종(高宗) 5년(1868)에 현판은 훼철되고 건물은 남아있었으나 6.25사변 당시
북한군 출몰을 방지하기 위해 UN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80년 금계호 담수로 수몰되기 전까지 단소와 활수당, 욱양서원 샘터가 있었으나 단소는 금양정사 앞에 이설되었고, 활수당
은 복원하지 못하였다. 샘터자리에 금곡 황영봉(錦谷 黃永鳳 1934년~2006년)의 후손들이 욱양서원 복설을 위한 초석으로 공
사를 진행하였고, 황씨중앙종친회에서 기념식수를 하였다.
욱양서원샘이 2023년 8월 집중호우로 흙더미에 묻혀 10월에 금곡의 뜻을 기리라는 박계남(朴季男)(소고 박승임선생의 후손)
여사의 주창으로, 욱계 황영회(郁溪 黃永會) 가 중심이 되어 자손들이 뜻을 모아 서원샘의 원천(原川)줄기에 이설하여 복원
공사를 진행 중이다.
욱양서원 샘터자리에 소백산 철쭉으로 소공원을 조성하여 금곡이 활동하던 시문학회 월란척촉회를 기념하고, 금계문학
도서실(錦溪 文學 圖書室) 로 시민 모두의 쉼터를 만들 예정이다.
자료실: 금계문학관 www.hwangbi.or.kr 금계 황준량 후손 황병극 (010-8835-7601)
《增補文獻備考 213, 學校考, 各道祠院,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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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mp4 (4.0M) 3회 다운로드 | DATE : 2023-10-05 05: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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