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선비촌 중심인물...권두문, 황섬, 배응경, 이개립, 김개국, 황시 > 錦仙 선비자락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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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선비촌 중심인물...권두문, 황섬, 배응경, 이개립, 김개국, 황시 > 錦仙 선비자락 소식

영주 선비촌 중심인물...권두문, 황섬, 배응경, 이개립, 김개국, 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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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3회 작성일 23-09-0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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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권두문(權斗文 1543-1617) : 중종~광해군. 본관 안동.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이며, 박승임의 문인이다. 1572(선조 5)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승문원 교검, 사헌부 감찰을 거쳐 칠원현감, 성균전적, 형조정랑, 청도군수를 역임하였다. 1592(선조 25) 평창군수에 부임하였을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평창지역으로 들이닥친 왜군과 일전을 치러야만 했는데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적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후 영월·원주 등지로 이송되었다가 탈출하기까지 20여일 동안을 적진에 갇혀 있게 됐다.

 

그는 이에 대한 경과를 호구록(虎口錄)이란 기록으로 남겼는데, 여기에는 당시 관민들을 통솔했던 자신의 결연했던 입장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천·영천·금성·간성의 수령을 거쳐 내자시정·통례원정을 역임하였다. 후에 왜란 중에 쌓은 공적을 인정받아 도승지에 증직됐으며 영주 구호서원에 제향되었다. 남천집이 있다.

 

30.황섬(黃暹 1544-1616) : 중종~광해군. 본관 창원.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 또는 돈암(遯巖), 황응규의 아들이다. 1564(명종 19) 성균관유생이 되고, 1570(선조 3)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한성부참군·해운판관·황해도사·호조좌랑 등을 거쳐 1577년 서천군수가 됐다. 이 때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정언을 거쳐, 사간·집의·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성주목사가 됐다. 임진왜란 때 병조참지로서 어가를 호종하고 군량 수운에 공을 세웠으며, 병사모집과 군량공급에 관한 국방정책을 건의했다. 대사성·부제학·대사간·이조참의를 거쳤다. 광해군이 즉위해 그의 매부였던 영의정 류영경이 축출되자 그도 함께 정치적 탄압을 받아 낙향했다. 은퇴 후에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영주 우곡서원에 배향됐다.

 

31.배응경(裵應褧 1544-1602) : 중종~선조. 본관 성주. 자는 여현(汝顯) 또는 회보(晦甫), 호는 안촌(安村)이다. 박승임의 문인으로 1576(선조 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정자, 사헌부 감찰, 예조좌랑을 거쳐 공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후 청도군수로 재직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대항하여 싸웠다. 순찰사와 안집사에 보고하여 화약과 총통을 공급받고 무기와 군기를 갖추었다. 이에 격문을 지어 관내 선비들에게 참여를 호소하여 군사 천명을 모아 그들을 야격군이라 했다. 적진의 형세를 살펴 허점을 찾아 공격하니 적진이 크게 동요하여 왜적 수백 명을 포획하거나 수급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이 전공으로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정유재란 때 나주목사로 금산을 수비하면서 이순신의 요청으로 후퇴하는 적의 퇴로를 막고자 하였으나 감사 황신의 무고로 투옥됐다. 그뒤 곧바로 석방돼 영주에 머물면서 류성룡·정구·김륵·김우옹 등의 명유들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냈다. 천토록·안촌집이 있으며 순흥 봉계서원에 배향됐다.

 

32.이개립: (1546-1625)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中 혹은 大仲), 호는 성오당(省吾堂역봉(櫟峰). 대호군(大護軍) 이욱(李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선동(李善童)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준(李竣)이며, 어머니는 예천권씨(醴泉權氏)로 권공례(權公禮)의 딸이다.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이다. 1567(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1586(선조 19)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퇴하였다. 1591년 장현광(張顯光)과 함께 유일(遺逸: 학문과 덕행이 높아서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중요한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선비)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는데 부족한 식량과 군량의 조달에 공이 컸다. 이러한 공에 의하여 수령을 감당할 인재 30명이 천거된 중에 이개립도 포함되어, 1594년에 자여찰방(自如察訪)에 임명되고 다음해에 낭천현감(狼川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6년 산은현감(山隱縣監)에 임명되고, 다음해 정유재란 때 체찰사종사관(體察使從事官) 황여일(黃汝一)의 천거로 향병대장(鄕兵大將)이 되었다. 그러나 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가 의병을 자기 휘하에 속하게 하지 않은 데에 사감을 품자, 고향에 돌아가 오로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조경(趙絅)이 묘갈명을 지었다.

 

33.김개국(金蓋國 1548-1603) : 명종~선조. 본관 연안.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박승임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관직은 형조·공조·예조 정랑을 거쳐 강원도사, 충청도사, 옥천군수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는 영주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전란이 끝난 후에는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효성이 지극하고 검소하였으나 남에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임해서는 의리로써 조금도 굽히는 바가 없었다. 집 서쪽에 소나무 백그루가 있어 그 설한에도 푸르름을 사랑하여 집 편액을 만취당이라 하고 호를 삼았다. 영주 삼봉서원에 배향됐다.

 

34.황시(黃是) 1555(명종 10)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시지(是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증좌찬성 황희성(黃希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 황사우(黃士祐)이고, 아버지는 직장 황응규(黃應奎)이며, 어머니는 의빈부도사 이수려(李壽旅)의 딸이다. 부제학 황섬(黃暹)의 동생이다.

1579(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4년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94년 병조정랑을 거쳐 지평, 이듬해 문례관(問禮官)과 응교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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