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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녕의 백학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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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3회 작성일 21-08-1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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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녕의 백학서당은 가정 년간 금계 황공께서 이 고을에 부임하시어 사림(士林)을 위해 양강(羊江)의 위 백학산의 아래에 한 채의 집을 지어 퇴계 이황선생에게 품부(稟賦)하여 절목(節目)을 정함으로써 한 고을의 많은 선비들의 공부하는 장소로 삼았으며,
 숙종조 무오년(서기1678)에 고을의 부로(父老)들이 능산(陵山)아래에다 이축(移築)하여 “백학서원“이라 편액하여 퇴계선생을 주향(主享)으로 금계 황준량을 배향(配享)으로 하여 이로써 갱장(羹牆)의 사모함을 부친 것이 100여년에, 고종조 무진년(서기1868) 서원 철폐령으로 이 서원을 철거하여 위토(半畝)와 묘우(明宮)는 잡초가 우거지고 주춧돌은 평평해졌으며, 높은 담장은 언덕의 빈터에 몰입(沒入)되었으니, 이 서원을 다시 세우자는 무리들(縫掖之倫)이 어찌 고금(古今)의 느낌이 없겠는가?
 정이천(程頤)이 말하기를 ‘우물은 차마 없애지 못하고, 땅은 차마 버릴 수가 없다고 하셨으니, 그윽이 예전의 서원을 생각해보면 본래 선비들의 학문하는 장소인지라 비단 (성현을)제사하는 곳일 뿐만이 아닌즉, 강당을 세워 학문을 강론함이 무엇에 구애된단 말인가?
 이에 고을의 선비 모모씨 등이 서원을 새로 짓는 일을 주간하여 옛 법도로 나아가 새롭게 하고 서원으로 인하여 강당으로 하니, 무릇 10칸 가운데 3칸을 강당으로 하고 서쪽의 위는 방으로 남쪽의 날개는 다락으로 동쪽의 위는 실(室)로 남쪽의 날개를 퇴실(退室)로 하니, 으리으리하게 큰 집이라.
 다만 보이느니 운물(雲物)은 경관을 바꾸고 초목(草木)은 그 색깔을 더한다. 우리 고을의 군자들이 옷자락을 걷고 올라 선정(先正:先哲)의 글을 읽고 선정(先正)의 도(道)를 강론(講論)하여 선정(先正)의 가르침으로 하여금 환하니 다시금 세상을 비추게 한다면, 즉 저 세상 밖(世外)의 사악한 말(邪說)과 잘못 된 학문(曲學)은 저절로 햇빛아래 눈처럼 녹을 것이며, 이 강당은 장차 양강과 학산과 더불어 무궁한 훗날에 까지 흐르게 되리라.
 강당이 이미 준공(낙성)되어 여러분들이 말씀하기를 “기문을 써 주게”라 하기에, 자신을 돌아보면 또한 퇴계 선생의 남긴 무리(遺徒)이며, 하물며 욕되게도 강당의 임원임에랴? 의리상 감히 글재주 없음으로써 사양치 못하고서 드디어 이로 기문을 쓰노니 여러 군자들은 외울 지어다.

□ 문헌으로 본 백학서원의 연혁
   1. 백학서당의 설치
     서당은 금계 황준량이 신녕현감 재임 기간 중 설치되었으니 서기 1552년이다.
   2. 설치 장소
     신녕현 대량면 추곡의 백학산으로 지금의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백학산이 양강(고현천)과 만나는 절벽 위
   3. 규모 : 강당 고직사 우물(묘우는 없음)
   4. 설치 목적
     당시 신녕현 관내에는 관학인 신녕향교를 제외하고 별다른 교육기관이 부재하여, 성현의 가르침으로 풍속을 변화하고 백성들을 가르치는 강학의 장소로 활용.
   5. 개요
     금계 황준량은 백학서당을 만들기 전에 도산으로 가서 스승인 퇴계선생을 뵙고 절목(節目)과 현판과 주련(존심주경(存心主敬) 옥간풍대(玉澗風臺))을 받아 옴. 금계 황준량은 스스로 서문을 지어 사실을 기록하고 시(詩)3편과 도산서원의 학규(學規)로 학문을 권장하고 권면하는 본보기로 삼음.
   6. 변천
     ○정사(精舍)-백학서당(白鶴書堂) 1552년
     ○중수 – 포사와 묘우 중수. 1612년
     ○이건-화남면 능계(오도리)로 이건하고 백학서원으로 이름을 바꿈. 1658년
     ○증축 – 관리사 창고 포사를 지음. 1669년
     ○증축 – 묘우 건립. 1677년
     ○위패봉안 및 향사 - 퇴계 이선생을 주벽으로 하고 금계 황준량 종향(從享)으로 춘추 두 차례 향사. 1678년
     ○풍영루 건립 – 서원의 외삼문. 1701년
     ○훼철(毁撤) -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1868년
     ○강당 재축(再築) - 백학서당 강당을 다시 지음. 1900년
     ○백학학원으로 개명하고 신교육 실시 – 1920년

□현황
  백학서원의 옛 터에 남아 있던 백학서당의 강당은 100여년 사이에 허물어져 폐허로 남았더니 2016년 호국보훈시설로 지정되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강당건물이 새롭게 지어지고 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당초 금계선생께서 처음 서당을 지으신 백학산의 고지(故址)에 백학서당을 처음 규모로 서당을 중건하여 선생의 유지도 받들고 나아가 세교(世敎)에 활용함이 가할 것으로 사료됨. 



白鶴書院移建講堂上梁文

백학서원 이건 강당 상량문 

 

擇新基而移創하니建院之規模已成이라

새로운 터를 골라 옮겨 지으니 서원을 세우는 규모가 이미 이루어졌구나

 

仍舊貫而改爲하니講學之堂宇斯作이라

옛 제도를 인하여 고치니 강학의 집이 이에 지어졌다

 

虹梁擧於白日하니燕賀徧於靑衿이라

무지개 같은 대들보를 밝은 날에 들어올리니 제비들이 두루 학생들을 축하하네

 

竊惟書院經始之初하니粵在錦溪爲宰之日이라

그윽히 서원을 경영하던 최초를 생각해보니 지난 금계 황준량공이 신녕고을의 현감재직시절이라

 

錦溪之自述佳什이燦瓊玉於壁間이요

금계께서 스스로 지은 아름다운 시편이 찬란하게 벽 사이에서 구슬처럼 빛나고

 

退陶之手筆華扁은煥銀鉤於楣上하여

퇴계 이황선생께서 손수 써 주신 아름다운 편액은 밝게 문미 위에 은고리로 걸려있어

 

幾多儒林之矜式하고幸爲後學之藏修런가

얼마나 많은 유림들이 긍식하여 다행히 후학들의 장수가 되었던가

 

雖見災於島夷나慶重營於僉議하니

비록 임진왜란 때 왜놈들의 재앙을 입었지만 여러분들의 의논으로 다시 지었음을 축하하니

 

遺風不泯이면至敎彌長하리라

남긴 바람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극한 가르치심은 더욱 길리라

 

誦存心主敬之詞하면怳若面承이요

존심주경의 글을 외면 어렴픗함이 마치 눈앞에 뵌듯하고

 

指誨玩玉澗風臺之句하면依如目覩라

옥간풍대의 귀절을 가리켜 가르치면 의연함이 마치 눈으로 본듯하네

 

詠歸享祀之禮當興하고守護之路宜廣이나

시를 읊으며 돌아오고 제사를 드리는 예는 마땅히 일으켜야 하고 지키고 보하하는 길은 의당 넓어야 하지만

 

然이나局內之逼窄하며況山脊之剛燥하여

그러나 국내가 좁은데다 하물며 산등성이라 돌이 많아서

 

不便於立廟設齋하고無望乎井飮田食이라

사당을 세우고 재실을 만듦에 불편하고 우물과 위토(밭)는 바랠 수도 없어서

 

玆用移建於勝地하니龜筮協從이라

이에 좋은 땅으로 옮겨 짓고자 하니 거북점과 시초점(주역점)이 모두가 좋다하네

 

遂因輸運하여其舊村丁壯이畢出하고

드디어 이삿짐을 옮기는데 옛 마을의 장정들이 몯 나오고

 

不借工倕之手에方圓平直에各得前規하며

장인(기술자)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반듯하고 둥글고 평평하고 곧음에 각기 예전 법도를 얻었으며

 

不斷徂徠之松이나椳闑店楔咸適其用이라

가고오는 소나무를 자르지 않고도 기둥과 문지방 등이 모두 그 쓰임에 적합하다

 

幾年乎神慳鬼馝런가一朝焉鳥革翬飛로다

몇년을 귀신이 아끼고 감추었던가? 하루아침에 꿩이 날아갈듯한 아름다운 집을 지었구나

 

瞻望舊基하면可想黃先生建學芳躅하여

옛 터전을 바라보면 가히 황선생(금계 황준량)이 후학을 가르치신 향기로운 발자취가 생각나서

 

用施前揭하니猶存魏了翁講道山名이라

예전에 걸었던 이름(백학서원)으로 편액하니 오히려 위료옹이 도의를 강론하던 산이름(백학산)이 있구나

 

信乎君子之攸躋며抑亦風氣之所聚로다

진실로 군자들이 오르는 곳이며 또한 바람과 기운이 모이는 곳이로다

 

對三面之彩岳하고橫一帶之長流하니

세 방면의 아름다운 산들을 마주하고 띠 같은 긴 물줄기가 비껴흐르니

 

物産則稻粱魚鼈之肥饒요人居則士農工賈之稠密이라

물산은 곧 벼와 기장과 물고기와 자라의 살찌고 넉넉함이요, 사람이 사는 것은 선비와 농사꾼 기술자와 장사꾼의 조밀함이라

 

在人事而盡美하니於改卜而何傷인가

사람의 일에 있어 모두가 아름다우니 터를 옮긴들 무엇이 나쁠텐가?

 

將有崇奉之儀에先爲培養之所하니

장차 (도의를 아니면 퇴계와 금계)높여 받드는 의식에 있어 먼저 배양의 장소로 삼아야 하리니

 

士子向道之志는從此益勤하며

선비들의 도를 향한 뜻은 이로부터 더욱 부지런해질 것이며

 

民俗尙賢之風은自玆愈振하리라

민간의 풍속에 현인을 숭상하는 바람은 이로부터 더욱 떨쳐지리라

 

敢申呼邪之唱하여以贊兒郞之謠하노라

감히 들보드는 노래를 불러 그것으로 어기영차의 노래를 돕는다




抛梁東하니削玉三峰聳碧空이라

들보를 동쪽으로 간듯 드니

옥돌로 깎은 세 봉오리 푸른 하늘에 우뚝하다

 

颯爽仙風來几席하니自然淸興滌煩胸이라

상쾌한 신선바람 책상자리로 불어오니

저절로 맑은 흥취 가슴 번뇌 씻어준다

 

抛梁西하니眼看天日遠岑低라

들보를 서쪽으로 건듯 드니

눈에 보이는 하늘의 태양 멀리 산봉오리 아래로 멀구나

 

東隅雖逝桑楡在하니至道要存一變齊라

해 뜨는 곳은 비록 멀어져도 해 지는 곳은 있으니

지극한 도리는 오로지 한번 바뀌는 가지런함에 있는 것

 

抛梁南하니白鶴山頭捲曉嵐이라

들보를 남쪽으로 건듯 드니

백학산 봉오리에 새벽의 남기를 거두네

 

忽憶先生開院日하니提撕怳若丈相函이라

갑자기 선생의 서원만들던 때를 생각하니

이끌고 가르치심이 마치 스승이 도우시듯

 

抛梁北하니普賢山勢連宸極이라

들보를 북쪽으로 건듯 드니

보현산의 형세는 북극성과 연이었네

 

蜿蟺淑氣此爲窮하니必有生全才與德을

꿈틀대는 봄의 기운 여기에서 다 하니

반드시 온전한 재주와 덕 낳음이 있으리라

 

抛梁上하니萬古高明人所仰이라

들보를 위로 건듯 드니

만고의 높고 밝음 사람의 우러른 바라

 

一氣鳶魚化育行하니方知此理眞無妄을

한 기운이 솔개와 물고기의 변화와 기름을 행하니

바야흐로 이 이치는 참으로 망녕 됨 없음을 알겠구나 

 

抛梁下하니混混源泉流不舍라

들보를 아래로 건듯 드니

아득한 샘의 원천은 흘러감 쉼이 없어라

 

進必盈科放海門하니須知有本如斯者라

나아감엔 반드시 웅덩이 채운 후에 바다로 흘러가니

모름지기 근본 있음 이와 같음을 알겠구나


伏願上梁之後에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후에

 

賢才蔚興하고髦士輩出하여

어진이 재주있는 이들 울연히 일어나고

뛰어난 선비들을 배출하되

 

不事口耳之習이요專尙作成之方하여

입과 귀로만 익힘을 일삼지 아니하고

오로지 작성하는 방법을 숭상하여

 

家程戶朱하여縱未探天根月窟하며

집집마다 이정과 주희와 같아서

방종하여 하늘의 맨 끝(천근)과 달 속의 굴(월굴)을 더듬지 말게하고

 

賦宋詩李하여不難作錦肝繡腸하면

송나라의 부와 이태백의 시와 같아서

비단의 간과 수놓은 창자 같이 지음을 어렵지 않게 해주시면

 

不亦休哉아此其大者니라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것이 그 대략(또는 큰 것) 이노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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