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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선생...환벽정 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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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5회 작성일 22-03-1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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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정 기문

프로파일 영천선비 ・ 2021. 1. 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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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정의 본래 이름은 비벽정이다. 처음 금계 황준량이 고을을 살면서 객사의 뒤편 성환산의 동쪽 자락이요 가사천의 서쪽 언덕에 대나무로 정자를 엮어 죽각이라 하였고, 후에 비벽 이고가 고을살이하면서 허물어진 죽각을 다시 지으면서 비벽이라 이름하던 것을, 후에 비벽정이 퇴락하여 동춘의 선고께서 정자를 다시 지으면서 환벽이라 이름을 바꾸었다.이에 나는 동춘선생의 기문을 우리글로 다시 풀어쓰고 원문까지 옮겼다.

환벽정 기문(동춘 송준길)

만력(萬曆) 신해년(辛亥年)에 선친계서 화산(花山)의 수령으로 오셨을 때 나의 나이 겨우 6~7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를〕따라 간 것이다. 그때의 자세한 일은 알수 없지만 객관(客館)의 서쪽에 작은 정자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대나무 숲은 일구어 바위에 횃대를 걸었고, 물이 흘러 소용돌이 쳐 섬돌에 부딪혔으며, 그윽이 한가하고 깨끗하여 자뭇 인간의 지경이 아니었으니, 이곳이 바로 환벽정이라 불리워진다. 대체적으로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공이 신녕의 현감으로 재직 시 이 정자를 창건하였다하며, 퇴도 이선생께서 근체시(近體詩) 칠언(七言) 율시 한수를 읊으셨는데 이는 지금 문집 속에 실려 있다. 생각해보면 황공께서 이 시를 얻고 반드시 현판에 새겨 걸었을 것이며, 한때의 우러러보는 곳으로 삼고자 했을 것이지만, 정자와 시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선친께서는 지은 정자는 참으로 없앨 수 없으며 퇴계 이선생의 유적을 더욱 사라지게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일을 하시는 여가에 옛 정자 터로 나아가 정자를 다시 짓고 아름다운 꽃과 기이한 나무들을 더 심으셨다. 문집 중에 실려 있는〔퇴도 이선생의〕시를 찾아내어 깨끗하게 다시 베끼고 나무에 새겨 정자의 문미(門楣) 사이에 걸어 두셨다.

정자 만드는 일이 이미 이루어지매 선원 김상공 치천 윤상공께서 사신으로 가실 때 지나면서 머물고 감상하시고는 차마 떠나가지 못하고 각각 오언율시 한수를 남기셨다. 그 후 여러 명사들이 번갈아 가며 술잔 들고 주고 받은 시가 매우 많으니, 이 정자는 실로 한 지역의 명승지다.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잡초 우거지고 황폐해져 사람들은 이곳에 정자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 또한 몇해가 되었다. 무신년에 함평 이재길이 이곳의 수령이 되어 감개한 회포를 일으켜 거듭 중수하여 한결 같이 옛 모습을 회복하여 정자를 지은 뒤 나를 찾아와 정자를 새로 지은 사실을 알려주고 나에게 편액의 글씨를 쓰고 기문을 짓게하였다. 내 글이 서툴러 맡은 바 일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차마 끝까지 사양할 수가 없어, 삼가 모습을 엄숙히 하여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말하기를, 무릇 고을에 정자가 있음은 다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자 함은 아니다. 장차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정신을 수양하여 조정에 나아가 근원을 맑게하고 교화를 일으키는 근본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옛 사람들은 거듭 말씀하셨다. 하물며 퇴계선생은 참으로 백세의 종사이시니, 그분의 한 마디 말씀과 하나의 글자라도 배우는 자들은 오히려 보배처럼 아끼고 간직해야 할 것이며, 더욱이 말의 정밀함은 성품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에리오.

선친께서는 율곡선생의 문인으로, 퇴도 선생을 존중하고 사모하여 실로 추종하였다. 금계 황준량공께서 정자를 중수하여 그의 시를 내 건 것은 참으로 우연이 아닐 것이며, 이 현감 또한 이를 계승하여 새롭게 하였으니, 아! 이 정자는 결코 없앨 수도 없고 이 씨 또한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원하건대 훗날의 수령들은 다시 이 뜻을 공경하여 이어 수리하고 더하여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고 고을의 배우는 자들을 고무하여, 다만 시만 외우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글들을 읽고 고 도를 찾아 강습하고 행할 것이니, 풍속의 교화에 어찌 작은 보탬만 될 뿐이리. 내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예전 화산 땅에서 노닐던 생각을 해보니 벌써 지금으로부터 60년이 되었다.

한번 이 정자에 올라 어릴 때 놀면서 구경하던 그 꽃들과 나무를 두루 보기를 항상 바라다가, 옛 노인에게 물러 선친의 유족을 찾았더니 한결 같이 빛났지만, 지금은 늙고 병들어 모든 뜻한 것이 이미 이룰 수 없어 궁벽한 초가집에 칩거하고 있으니, 이 현감의 요청으로 슬픈 마음으로 이 글을 써서 이것으로 다른 날 수령오는 사람과 고을의 시 벗들에게 보이는 바이다. 선친의 휘는 이창(爾昌) 자는 복여(福汝) 성은 송씨(宋氏)로 은진인(恩津人)이다, 신해년이 서기1611년에 이 고을의 수령으로 오셨다가 계축년인 서기1613년에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셨으니, 그 당시 선친께서 남기신 사랑이 지금까지 백성들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

(원문)

萬曆辛亥間先君子出宰花山縣余年方六七歲隨往焉時未省事而尙記其客館之西偏有小亭披篁架巖水㶁㶁循除鳴幽閒潚灑殆非人境卽所謂環碧亭也盖黃錦溪俊良宰是縣始創斯亭退陶李先生作近體七言一律以詠之今載於文集中想黃公得此詩必刊而揭之以爲一時聳觀之地而亭與詩皆無在者先君子以爲亭固不可無而先生遺跡尤不可泯滅治事之暇乃就舊基重建其亭益樹以以佳花異木出其詩於集中精寫以刻更揭於楣間亭旣成仙源金相公穉川尹相公適奉使以過留連愛賞不忍別去各留五言一律以記之厥後諸名勝遞筒酬唱甚多實一路之勝觀也歲月旣久寢成蕪廢不知有斯亭又有年矣崇禎戊申咸平李侯材吉宰其地爲之感慨興懷重加修葺一復舊制間嘗造余以諗之旣令余寫其亭額又使作記以識之余文拙不堪當而亦有所不忍終辭者謹肅容再拜作而曰夫邑之有亭館非直爲觀美將以頤其神養其情以淸出治之源以培興化之本盖古人累言之矣況我退陶先生誠百世之宗師其片言隻字學者猶且珍愛寶藏之況言之精者出於性情之情者耶先君子卽栗谷先生之門人尊慕退陶實有所受其踵錦溪而修其亭揭其詩者誠非偶然而李侯又繼而新之噫謝亭不可廢而斯亭不可泯也願後之爲宰更加敬飭續而修之俾無池壞且敞舞邑之學者徒誦其詩又將讀其書尋其道講習而服之其有補於風化夫豈淺鮮矣乎余孤露之餘黙想花山舊遊甲子適一遇矣常願一至斯亭周觀童子時所遊玩其花木問其舊老以尋先君子之遺跡一以炯炯而今老且病四方之志已倦屛蟄窮廬此恨徒深旋因李侯之請不覺感慕悽咽聯書此以示異時之來宰者與其邑之士友先君子諱爾昌字福汝姓宋氏恩津人辛亥宰其縣癸丑罷歸遺愛至今在民云

[출처] 환벽정 기문|작성자 영천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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